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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1974년 7월, 나라 전체가 '마이카 시대'란 기대에 잔뜩 부풀었다. 승용차 1대를 내건 5주간의 공모전에서 최종적으로 선택된 자동차 이름이 '포니(pony)'다. 그리고 1976년 2월 포니가 처음 출시되면서 한국은 세계 16번째 고유 모델 자동차 보유국이 되었다.

 “무슨 놈의 차가 꽁지 빠진 닭처럼 생겼어?" 정주영 회장은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지만 이후 미국, 캐나다, 아프리카로 많이 수출했다. 1980년대 사회에 나온 베이비붐 세대들은 생애 최초의 '애마'를 대부분 포니로 결정했다. 60개월 할부 대열에 겁 없이 동참하고는 다음 날부터 통근차를 버리고 '마이 리틀 포니'를 몰고 출퇴근했다. 나만의 '애마'가 자랑스러운 날들이 이어졌다. 애마! 자동차는 곧 말, '네 바퀴로 가는 말'이었고 자가용은 전부 애마라 불렀다. 포니는 우리를 어디든 데려다줬고 뒷자리에 탄 부모님은 흐뭇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국산품 애용은 배반할 수 없는 철학이자 생활의 발견이었고 애국의 길이라는 자긍심이 가득했던 때의 풍경이다.

 포니는 조랑말이고 갤로퍼는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이다. 에쿠스는 개선장군이 타는 말을 상징한다. 엠블렘은 갈기를 휘날리며 달리는 말이고 하늘을 나는 천마였다. 조랑말은 착하고 순하고 단단한 말이다. 작지만 체질이 강건하고 근육질로 이뤄진 단단한 몸에다 온순하고 지구력이 강하다. '포니'란 차 이름은 외양과 특질에 걸맞은 작명이었다.

 차 이전의 운송수단은 말이었다. 전쟁에도 말이 필수였고 외교와 교역에도 말이 필요했다. 울산 등 광역시급에 있던 역참은 지금의 KTX역 기능을 했다. 본격적인 울산과 말의 인연은 방어진과 남목의 '마성(馬城)'에서 시작된다. 동구 마성터널 위 봉대산이나 현대공고 뒷산, 마골산 일대에 옛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마성은 말이 도망가는 것을 막기 위해 목장 둘레를 돌로 막아 쌓은 담장 같은 성이다. 조선 시대에 중국에 공물로 제공하거나 국방과 교역, 교통수단으로 쓸 말을 기르기 위해 해안가와 섬 등에 200여 개의 목장을 설치했다. 남목도 그중 하나다. 경북 장기 목장의 남쪽에 있으니 남목(南牧)이란 부르다 지명이 됐다.

마성.
마성. 작가 제공

 한때 방어진 목장의 둘레가 47리, 여기서 키운 말이 300필이었고 염포와 양정의 경계선을 따라 성골에서 강동 경계까지 마성이 있었다는 지도도 있다. 울산 최초의 읍지 학성지에는 1651년에 새 마성을 쌓았다고 한다. 오늘의 남목마성이다. 높이는 1.5~2m 정도이고, 둘레는 1,930보(步)에 이른다고 기록돼 있다. 이 성은 울산과 언양, 양산은 물론 멀리 문경, 청도, 밀양, 영천, 경주 등지에서 동원된 사람들이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淸道' '彦陽' '已上興海' '七邑更築' '淸道三百七十七步 順治八年辛卯三月日'라는 글이 새겨진 돌이나 암각이 발견됐는데 1651년(효종 2년) 7개 지역의 장정들이 성을 개축했다는 내용이다. 남목마성은 1897년(고종 34)에 폐지되었다. 

 실록을 보면 여말선초 시기에 매년 중국에 말을 공물로 바치느라 국가 경제가 휘청거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공민왕 때부터 세종 11년까지 55년 동안 약 9만 필을 중국에 보냈다. 연평균 1,636필이다. 공민왕 23년에서 공양왕 3년까지 약 3만 필, 조선 태조 원년에서 세종 11년까지 약 6만 필을 교역했다. 중국의 요구는 점점 많아졌고 지방의 목장이나 백성들이 모두 감당했던 바 이로 인한 나라 국가 경제의 피폐나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어땠으랴.

 예나 지금이나 울산은 국부의 모판 같은 곳이다. 울산이 잘 살아야 우리나라가 잘 산다는 말이 허투루 나온 게 아니다. 그때의 울산(남목 목장)은 오직 왕실과 공물을 감당하기 위한 마성의 땅이었지만 지금은 자동차 제조와 수출로 나라 경제를 떠받치는 전진기지다. 염포와 양정의 마성을 달리며 뛰놀던 말이 세대를 거듭하면서 염포만에서 네 바퀴 달린 말을 억수로 낳았다. 마성에서 시작된 포니의 신화! 마성에서 놀던 조랑말(pony)이 울산에서 자동차로 환생했고 이제 갤럽(gallop, 전속력으로 달리게 하는)을 지나 다시 개선장군의 천마(Equus)로 진화를 거듭해 왔다.  김잠출 울산역사연구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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