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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장세련
삽화.ⓒ장세련

 

순흥부에는 안흥선의 식솔들이 모두 불려와 있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이를 안고 있는 안흥선의 처 예천 댁이었다. 예천 댁은 죄를 지은 사람마냥 아이를 품에 안고 고개를 잔뜩 숙이고 있었다. 한명청은 안흥선을 향해 벼락같은 소리를 질렀다.

 “네 이놈. 네 죄는 네가 알렸다. 일개 처사가 어떻게 관아를 내 집처럼 드나들었는지 낱낱이 고해바치거라."

 안흥선은 낯빛이 백랍처럼 하얗게 변해 고개를 떨구었다. 순흥 부사 이보흠도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듯했다. 아무래도 안흥선의 입을 닫게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여봐라. 당장 형틀을 대기하라."

 군사들이 즉시 주리를 트는 형틀을 대령했다. 안흥선을 형틀에 앉히고 포승줄로 묶었다. 안흥선은 어금니를 단단히 물었다.

 “저기 저 산적 놈은 이름이 무어라고 했느냐?"

 “네. 김장복입니다요."

 “그래. 김장복. 저자가 네 놈의 양물을 잘랐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이놈이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저놈의 주리를 틀어 보겠느냐?"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허락을 받은 김장복이 주릿대를 안흥선의 넓적다리 사이에 끼워 넣었다. 군사 한 명이 반대쪽에서 주릿대를 끼워 넣었다. 김장복이 세차게 주릿대를 눌렀다.

 “아아악!"

 단번에 외마디 비명소리가 튀어나왔다. 김장복은 옥에서 포승줄에 묶인 채 가오리 꼬리 채찍에 얻어맞던 생각을 하고 잔뜩 독이 올라있었다. 맞은 편 군사는 호흡에 맞추어 주릿대를 누르려고 하는데 김장복은 쉼 없이 주릿대를 눌렀다. 안흥선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고개를 푹 떨구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군사가 머리에 물을 퍼부었다.

 “잠깐 멈추어라. 이제 바른대로 실토를 할 테냐? 아니면 더 견디어 보겠느냐?"

 “살려주시오. 사실대로 무엇이든 털어놓겠습니다."

 “그럼 되었다. 우선 이 금두꺼비부터 이야기해 보거라. 이것이 너희 집에서 건너온 것이 분명하렷다."

 “네. 그렇습니다."

 “저저저어, 거짓뿌렁을…."

 무엇보다도 몸이 단 건 이보흠이었다. 안흥선이 모든 걸 다 불어버리고 나면 자신도 살아남기 힘들 것 같았다.

 “저자가 우선 자리를 모면하려고 거짓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사님은 잠자코 지켜보고만 계시구려."

 안흥선은 김장복의 양물을 자르게 된 경위를 소상하게 고해바쳤다. 며칠 전 백일잔치를 치른 어린 아들이 자신의 씨가 아닌 사실까지 까발렸다. 예천 댁의 품 안에 있던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걸 알아들은 것 마냥 목청이 터져라 울어댔다.

 김장복도 예천 댁이 낳은 사내아이가 자신의 씨라는 사실에 놀랐다. 어렴풋이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닌데 설마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예천 댁의 품 안에서 사납게 울어대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눈꼬리가 쪽 째진 것이 자신과 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낳기 전 만삭의 몸으로 자신과 만나 운우의 정을 즐겼던 예천 댁이었다. 아이의 씨에 대한 이야기는 일언반구도 없었다.

 한명청이 마당으로 내려와 접은 부채로 예천 댁의 고개를 치켜세웠다. 아이는 계속 울어댔다.

 “흠, 얼굴이 반반한 게 사내께나 밝히게 생겼구나. 샛서방을 보려거든 반듯한 양갓집 사내를 택할 것이지 하필이면 산도둑놈을 샛서방으로 삼은 것이냐?"

 예천 댁은 산도둑놈이란 말에 발끈했다. 고개를 바짝 쳐들고 한명청을 노려보았다. 사태가 돌아가는 모양새로 보아 이미 목숨부지 하기는 글러 먹은 것 같다고 판단했다.

 “이보시오. 한양 양반."

 “뭐라? 한양 양반?"

 “양반인지 상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허우대는 멀쩡하구먼요. 좆은 쓸만한 걸 차고 다니는지 모르겠소. 자신 있거든 어디 한 번 꺼내 놓아보시오. 댁 같은 사람들이 토끼좆 같은 걸 차고 다니면서 계집질한다고 껍적거립디다."

 “뭐라? 저런 발칙한."

 한명청은 얼굴색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계집년이 사내 맛을 보더니 눈이 뒤집힌 모양이구나. 여봐라. 저년도 형틀에 묶어라."

 군사들이 재빨리 형틀 하나를 더 가져왔다. 안고 있는 아이를 강제로 떼어놓고 예천 댁을 형틀에 묶었다. 아이를 안흥선의 큰딸이 받아 앉았는데 관아가 떠나갈 듯 자지러지게 울었다. 김태환작가 (월·수·금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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