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치명적 붉음
그 치명적 붉음
  • 김정규
  • 2013.09.24 17:01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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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하늘 아래 미치도록 붉은 사랑이 피었다 쓰러집니다. 일생 꽃은 잎을 만나지 못하고 잎은 꽃을 보지 못합니다.

 

한줄기에 나서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그 애절한 그리움으로 사람들은 때로 상사화로 오인하기도 합니다. 꽃무릇으로 더 알려진 석산은 수선화과 다년생 식물입니다. 9~10월 사이 꽃이 피고 꽃이 지고, 그제야 잎이 나오는 꽃무릇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결실마저 없는 허무가 밝히는 꽃의 빛은 그래서 시리도록 눈물겹습니다.

가는 대궁 위에 펼쳐진 섬세한 꽃들의 세상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립니다. 산다는 것은 이렇게 흔들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촉수 세운 예민함은 세상을 걸러내지 못하고, 거칠게 뱉어낸 말들이 비수처럼 꽂고 꽂히고 덧칠해 돌아온 말들이 귀를 더럽히기도 합니다.
짧은 열정의 시간을 보낸 꽃들이 우수수 떨어집니다. 주목받지 못하는 풍경 속으로 사라진 꽃무릇의 반생애가 저뭅니다. 영화榮華는 길고 짧음의 차이일 뿐 소멸로 향한 여정은 같습니다.

꽃을 버린 꽃무릇이 가을바람에 문득, 홀가분합니다. 김정규기자 kjk@ulsanpres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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