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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원 시조시인
이서원 시조시인

자기 자신을 누구보다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가장 어려운 게 스스로를 아는 게 아닌가 싶다. 속담에도 '남의 눈에 티끌은 보면서도 내 눈의 들보는 못 본다'고 하지 않던가. 늘 해가 바뀌면 다짐하는 것이 있다. 
 
'올해는 타인을 비방하지 말기'하지만 솔직히 쉽지 않다. 누가 내게 작은 돌이라도 던질 양이면 난 그에게 어마어마한 바윗돌을 던지는 격이다. 순수한 이성을 회복하고 나름 초연히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높은 봉우리가 우뚝우뚝 솟은 유럽의 어느 산을 다녀왔다. 수천 미터 높이에서 녹아 흐르는 계곡물은 얼음장처럼 차가웠지만, 봄의 새싹을 파릇파릇 적시는 그 생명수는 경이로웠다. 아무리 설산을 둘러업고 옹골차게 버티더라도 봄기운에 슬며시 자신을 내려놓을 줄 아는 미덕이야말로 우리가 또 자연에서 배우는 아름다움 아니겠나.      
 
중국의 상(은)나라 말엽 고죽국에는 군주의 아들인 백이와 숙제라는 형제가 있었다. 왕이 죽기 전에 숙제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다고 했다. 부친이 죽자 셋째인 숙제는 아무리 부친의 뜻이 그러하다 할지라도 관례에 따라 장자인 백이 형이 왕이 돼야 한다며 양보했다. 
 
형 또한 아버지의 원래 뜻을 거스를 수 없다며 왕이 되기를 거부하다가 결국 두 형제는 의리를 지키려 고죽국을 도망쳤다. 
 
이후 형제는 주나라 문왕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갔다. 그런데 그 사이 이미 문왕이 죽고 아들 무왕이 왕위를 계승해 문왕의 위폐를 들고 은나라 주왕을 징벌하러 가는 길에 서로 마주쳤다. 두 형제는 부자지간과 군신지간의 예의를 들어서 이 시기에 전쟁을 하는 것은 예가 아니라며 무왕을 만류하다 죽음 앞에 맞닥뜨렸다. 마침 여상인 강태공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 형제는 수양산에 들어가 주나라 곡식 먹기를 거부하고 고사리를 캐 먹고살다 끝내 굶어 죽고 말았다.
 
정의와 의리의 명분 속에서 생명마저도 아까워하지 않는 백이와 숙제를 우리는 흔히 형제성인으로 일컫는다. 그만큼 자신의 길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사관(死觀)이 저토록 숭고하다.
 
'갈고리를 훔치는 절구자(竊鉤者)는 주륙을 당하지만 나라를 훔치는 절국자(竊國者)는 왕후장상이 되는 자의 집에 곧 인의가 존재한다'는 말은 정말 과장이 아님이 명백하다. 
 
모두가 나라를 구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며 이번 지방선거에도 불나방처럼 뛰어들고 있다. 자기만이 유일한 대안이며 백성을 구할 인재라고 한다. 돌아보면 참으로 양두구육(羊頭狗肉)에 지나지 않은 이들을 어디 한두 번 보았던가 말이다. 
 
승리하면 모든 것이 미화되고 영웅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하지만, 패하면 그야말로 만고의 역적이 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 같아서 씁쓸하다.
 
이 시대의 진정한 백이와 숙제는 어디에 있을까. 자기 자리가 아니라면 기어이 사양하며 길을 떠나는 뒷모습에서 성인의 도를 본다. 무위자연에서 모든 걸 잊고 살아가자는 말은 결코 아니다. 다만, 최소한의 본분과 자신을 아는 눈은 가지고 살아야지 싶다. 간장종지에 바닷물을 다 담으려는 욕심이 화를 부르고 종내에는 나라마저 뺏기고 마는 역사를 반복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고산(高山)은 눈발이 내내 들이쳐서 온통 하얗더라도 이 땅의 낮은 동산에 봄이 오면 한쪽 허리를 녹여 물을 내어준다, 그것이 미덕이고 자연을 움직이는 통찰이라고 믿는다. 산이 스스로 갇혀 모든 걸 움켜쥔다면 결코 생명을 유지할 수 없다. 든든한 초목이 하지를 받치고 있기에 그 높이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익히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 어느 곳을 주시하며 생의 노를 저어가고 있나. 스스로 낮춰 생명의 질료가 되고자 다함 없이 유연하게 하는 마음 한 자락 가졌나. 
 
높아서 산이 아니라, 물이 흘러야 산이며, 높아서 오래가는 것이 아니라, 바닥을 적셔야 오래 간다는 어느 시인의 말이 새삼 뜨겁게 와닿는다. 
 
이제 곧 온 거리가 선거의 휘몰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 현명한 유권자가 곧 이 나라를 올곧게 이끌어 가는 성인임과 동시에 토대가 된다는 걸 잊지 말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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