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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련 동화작가
장세련 동화작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은 진리다. 단순히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위대한 철학자의 말이어서 오랜 세월 회자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와의 허심탄회의 시간이 간절할 때 종종 떠올리게 되는 말이다. 그럴때 소설을 읽으면 절감하게 된다. 소설속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면서 체증처럼 얹혔던 감정이 사라지기도 하고, 소설 속 인물들이 얽히고설켜 살아가는 모습에서도 갖게 되는 생각이다. 그러면서 더불어 드는 생각, 어째서 소설 속 인물들은 큰 갈등이나 삶의 부침이 없는 인물이면 안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같이 마음이 아프거나 고달픈 일상에 허덕이는 인물들이 안쓰러워서다. 그럼에도 소설을 읽는 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그런 과정을 극복하는 모습에 끌리기 때문이다. 하긴 인생 자체가 갈등이나 고통이 없다면 카타르시스도 없을 것이다. 갈등이 해소되었을 때의 가뿐함과 고통을 이겨낸 이후의 뿌듯함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요소이므로.

단편 묶음집에서는 유난히 관계에 따른 문제들을 다양하게 만난다. 작품마다 소재와 무대, 등장인물들이 달라서다. 짤막한 소설들은 그 나름대로 등장인물 개개인 삶이다. 작가의 경험이나 관심사에 따라 등장인물들의 삶의 폭도 달라진다. 그런 면을 감안하면 고흐의 변증법(심은신/산지니)은 무대가 넓다. 그만큼 삶의 방식이나 등장인물들의 개성도 다양하다. 이 책은 표제작부터 먼 나라를 연상하게 된다. 과연 고흐의 도시인 아를을 비롯하여 남극기지와 러시아의 아무르강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 동시에 작가 자신의 생활반경도 외면하지 않는다. 특히 '떼까마귀'는 이미 울산의 대표 명소인 태화강과 그곳에 자리 잡은 지 오래인 떼까마귀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같은 도시에 사는 터라 겨울 하늘을 뒤덮는 떼까마귀의 군무가 선명하게 그려진다. 인간의 삶이 상대와의 소통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장치를 숨긴 작품이지만 안다는 건 참 희한한 쪽으로 생각을 몰고 간다. 이야기 속에 숨은 의미보다 풍경이 더 선명하니 말이다.

이 책은 여덟 편의 단편 모음집이다. 전반적으로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주인공들.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일방적으로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정신과 의사 유지, 자신의 일상에 만족하지 못하는 공무원 정환, 스스로의 능력에 한계를 느껴 탈출구로 택한 남극기지 연구원 우진이 그들이다. 모두 저마다의 보편적인 아픔을 지닌 인물들은 전 세대의 고민과 아픔을 아우를 만큼 연령 폭은 크지 않으나 직업군은 다양하다. 가장 보편적인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새삼 깨닫는 것은 세상살이가 신산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다만 다른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갈등의 요소들을 찾아서 묶인 것을 풀어 내야 하는 건 스스로의 몫이라는 것을 일깨운다. 자신과의 화해만이 스스로가 성장하는 길이라는 걸 보여주는 주인공들. 그들에게서 깨닫는 희망은 여간한 위안이 아니다. 책을 읽는 기쁨도 여기에 있다.

남편에게 이혼을 통보받은 '고흐의 변증법' 주인공 유지는 정신과 의사다. 숱한 정신질환자들을 응대하면서 정작 자신의 정신세계를 들여다보지 못했음을 아를의 여행을 통해 깨달은 건 다행이다. 아를에서 만난 영화감독 고호상에게 고해성사처럼 이혼 사실을 털어놓은 뒤에야 유지는 깨닫는다. 상처는 꽁꽁 싸매기보다 열어서 바람을 맞고 햇볕을 쬐어야 빨리 꾸덕꾸덕 딱지가 생긴다는 걸.

나머지 이야기들도 어떤 식이든 자신과의 화해가 주제다. '알비노'는 10년 전 만났던 상담사에게 쓰는 편지형식의 작품이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닮아 유난히 까만 피부가 죽도록 싫은 희주는 상담사에게 들은 알비노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을 위로받는다.

'구라미'의 아내 또한 잘 나가는 대기업 간부에서 한직으로 밀려난 남편의 고민을 구라미의 죽음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를 보며 이해한다. 계약직 복지사가 돌봄이 필요한 소외계층 청소년을 돌보면서 편견의 굴레를 벗어나는 '봄날의 아가다'의 주인공 선혜 또한 상처가 없을 리 없다. 자신보다 더 힘든 처지를 견디는 청소년들을 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과정은 깊은 공감을 갖게 한다.

자신과의 화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내 주변인들의 모습이며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생을 마칠 때 우리가 누린 모든 것도 소멸하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영혼으로 교감했던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빈센트 반 고흐의 역설을 떠올린 작가의 말에 책갈피를 꽂는다. 이 책의 모든 주제를 아우르는 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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