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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윤미는 제 어미를 닮아 얼굴빛이 뽀시시 하게 고왔다. 올해부터 달거리를 시작하자 가슴도 제법 부풀어 올라 처녀티가 났다. 짓궂은 장꾼들이 윤미에게 농이라도 걸라치면 주모가 물바가지를 들고 나와 얼굴에 뿌렸다. 몇 번 그런 일이 있고 나자 아무도 윤미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다.  

 이선달은 건네준 물을 벌컥벌컥 다 들이켜고 빈 바가지를 주모에게 건네주었다. 바가지를 받아든 주모가 이선달의 옷소매를 슬쩍 끌어당겼다. 이선달은 주모의 손을 뿌리치려다가 못이기는 척 주모를 따라갔다. 주모는 이선달을 끌고 정지께로 가더니 문 앞에 멈추어 섰다.

 "동상에게 일러 줄 것이 있네."

 "뭐요?"

 이선달이 툭박지게 말을 받았다. 보나 마나 쓸데없는 이야기일 테니 빨리해보라는 투였다. 그래도 주모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이선달에게 바짝 다가와 몸을 밀착시켰다. 슬그머니  팔을 뻗어 기동의 손등을 슬쩍슬쩍 건드렸다.

 "먼저 넘어온 장꾼들에게 들은 소린데…."

 "뭔데 그래요?"

 "산막에 대장이 바뀌었대. 털보가 물러나고 새파랗게 젊은 놈이 대장이 되었다네. 털보는 얻어터져 콧대가 다 내려앉았대. 새로 온 놈이 보통이 넘는가 봐. 각별히 조심하게."

 "알았소. 바뀌어봐야 그놈이 그놈이지 별수 있겠소."

 "하여튼 조심하게. 어제 넘어온 장꾼들이 그러는데 사람 하나를 죽였다고 하더라고. 정말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아."

 "알겠소."

 이선달은 주모가 일러주는 말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흘려들었다. 주모는 그러는 이선달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자. 이제 출발해 봅시다."

 장 노인의 지시에 모두 주막을 뒤로하고 산길로 접어들었다. 장꾼들의 행렬이 마구령 비탈길에 붙자 해도 능선에 가까이 붙기 시작했다. 이선달은 행렬의 꽁무니에서 여유 있게 걸었다. 나이가 젊은 탓이기도 했지만 짊어진 장 보따리가 다른 사람에 비해 헐렁하게 가벼웠다. 행렬의 앞에 선 장꾼은 무거운 곡물을 진 곡물 장수와 독 장수였다. 부석장에서 물건값으로 곡물을 받은 장꾼도 앞쪽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걸었다. 풍기인삼을 취급하는 장꾼들은 비교적 걸음이 수월했다. 바짝 마른 건삼은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인삼이 고가이다 보니 주머니는 두둑했다.

 이선달의 보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작았다. 이선달이 취급하는 물품은 여염집 여인들이 사용하는 방물이었다. 양반집 마나님들이나 사용하는 사향은 무게가 얼마 나가지 않아도 인삼값의 열 배가 넘었다. 그러니 금으로 치면 이선달이 짊어진 장 보따리가 제일 값이 나갔다. 장마다 무거운 곡물 짐을 지고 재를 넘는 장꾼들은 이선달을 제일 부러워했다.

 '나는 언제나 이놈의 쌀가마니를 벗어던지고 사향단지를 품어보나.'

 '부지런히 쌀 짐이나 지게 사향 한 주먹이면 쌀이 세 가마일세. 돈이 있어야 품목을 바꾸지.'

 '품목만 바꾼다고 될 일인가. 양반집 마나님을 만나려면 그 상판으로는 어림도 없지.'

 여인들이 규방에서 사용하는 물품을 다루는 것은 주로 여자방물장수였다. 그런데도 이선달이 규방 물품을 다루는 데 대해 장꾼들은 특별하게 생각했다. 어떤 때는 저희끼리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아무래도 좆이 크거나 특별한 방중술이 있는 게 분명해. 그러지 않고서야 여염집 마나님들이 사내 방물장수를 들일 턱이 있겠나.'

 이선달은 듣고도 못 들은 척 귀를 막았다. 저들에게 대꾸를 하다 보면 점점 더 말이 꼬일 것이 분명했다. 이선달이 여염집 여인네들에게 어떻게 영업을 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본 사람도 없고 당사자는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알 수가 없었다. 

 이선달이 오일장에서 물건을 파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장마당에 물건을 펼쳐놓기는 했어도 워낙 고가였다. 장을 보러 나온 시골 아낙들이 사기에는 분에 넘쳤다. 이선달은 주로 순흥 일대의 양반집을 돌며 물건을 팔았다. 멀리는 안동과 예천까지 다니기도 했다. (월·수·금요일자에 게재됩니다) 김태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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