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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 장세련
삽화 장세련

 

모퉁이를 돌아갈 무렵 뒤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선달은 걸음을 멈추고 길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주막집 주모의 딸 윤미가 숨을 헐떡이며 고갯길을 올라왔다.

 “아제요. 잠깐만 멈춰보이소."

 이선달은 윤미를 위해 그 자리에 멈추었다. 일행들과 조금 떨어져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제요. 이거요. 이거 어무이가 아제 갖다주라고 해서 왔니더. 학학."

 윤미는 손에 들고 온 보자기를 내밀었다. 이선달은 망설임 없이 보자기를 받아 들었다.

 “이기 뭔데?"

 “떡이라예. 아제가 배가 고프면 안 된다고 바로 드시라고 했니더."

 이선달이 받아든 보자기를 풀자 콩고물을 버무린 인절미가 나왔다. 혼자 먹기에는 많은 양이었다.

 “알았다. 수고했다. 잘 먹을 테니 조심해서 내려가거라."

 “어무이가 아제 먹는 걸 보고 오라 했니더."

 “알았다. 먹으면서 갈 테니 그만 내려가 보거라."

 “예. 어무이가 사람은 뱃심으로 일한다고 꼭 먹어야 한다고 했니더. 그라고요. 새로 온 대장을 조심하랍니더."

 이선달은 인절미 하나를 베어 물었다. 그제야 윤미가 발길을 돌려 고갯길 아래로 내리뛰었다. 이선달은 윤미의 뛰는 모습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안 그래도 배가 출출 하던 참이었다. 주막에서 국밥이라도 한 그릇 먹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기다리는 장꾼들을 생각해서 그냥 물 한 바가지만 들이켜고 온 것이었다.

 인절미를 먹으면서 윤미가 전해 준 말을 되새겨 보았다. 산 사람들의 대장이 바뀌었다니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대장 노릇을 하던 털보를 밀어냈다니 약간의 호기심도 일었다. 주막을 출발하면서부터 줄곧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던 참이었다. 윤미가 건네주고 간 인절미를 받아먹기 전에도 봇짐 속에 항상 챙겨 넣고 다니던 육포를 꺼내 먹을까 생각했었다. 산채에 도착해 허기가 져서는 곤란할 것 같았다. 주막의 주모도 이선달과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았다.

 윤미가 건네준 인절미를 다 먹고 나니 작은 골짜기를 감아 돌아가는 곳에 도착했다. 작지만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물줄기에 목을 축일 수 있는 곳이었다. 장꾼들이 대나무를 물줄기 가운데 설치해 놓아 쉽게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선달은 입을 가져다 대고 벌컥벌컥 산골 물을 받아 마셨다. 답답하던 목이 시원하게 씻겨 내려갔다. 비로소 배가 꽉 차는 느낌이 들며 허기가 말끔하게 가셨다.

 뒤처진 걸음을 만회하기 위해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했다. 모퉁이를 돌아가는데 장 노인이 작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선달이 도착하는 걸 보고 황급하게 곰방대를 마무리했다.

 “아니 왜 혼자 남으셨소?"

 “자넬 좀 보려구."

 장 노인은 이선달과 걸음을 맞추었다. 오랜 장돌뱅이 생활에 산길을 걷는 것쯤이야 이골이 난 장 노인이었다. 젊은 이선달에게 뒤지지 않고 빠르게 걸음을 걸었다.

 “자네도 소식은 들었겠지?"

 “무슨…? 아! 산 사람 이야기 말입니까?"

 “역시 들었구먼. 나는 솔직히 걱정된다네. 털보를 꺾을 정도라면 보통 놈은 아닌 것 같네. 털보가 그래도 우리하고는 무난하게 지냈는데 말이야. 자네 덕이기도 했지만 말일세."

 “덕이랄 게 뭐 있습니까. 저도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렇긴 하지만, 우리야 여간 고마운 게 아니지. 흐흐."

 둘은 똑같이 지난번에 있었던 일을 되새겨 보았다. 소백산 멧돼지처럼 힘이 천하장사인 털보가 나가떨어지던 광경은 정말 가관이었다. 그날이 이선달이 처음으로 장돌뱅이들과 마구령을 넘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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