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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작가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 표지.
이지현 작가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 표지.

새해가 밝았습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서점에 갔어요. 올해 첫 시작으로 읽게 된 그림책이 있어요. '나는 요정이 아니에요'입니다. 그림책의 첫 장면을 펼치면, 여린 글자체의 한 문장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볼 수 없지만, 나는 있어요" 그림으로는 보드랍고 풍성한 목화송이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 목화송이의 흐름을 따라서 마치 요정처럼 가벼운 날개를 단 작은 사람들이 하나씩 둘씩 등장합니다. 처음엔 포근한 목화 사이에서 편안하게도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위태로운 가지 위에서 작은 손가락을 바삐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림책의 시선은 이들이 일하는 동선을 좇아서 석양이 지는 들판, 순백의 거대한 산, 색이 고운 사각형 천들 사이를 지나 쇼윈도에 이릅니다. 

작가는 글 없는 그림책의 장인답게 그림의 부드러운 변주로 이야기를 확장하고 질문합니다. 현실에서 노동이 이뤄지는 목화밭, 섬유 공장, 의류 공장들은 언뜻 요정이 사는 마을의 한 공간처럼 연출돼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들이 이어지며 마침내 쇼윈도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이 이야기가 현실의 문제를 짚고 있음을 무겁게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 있는 마치 구둣방의 요정처럼 보이는 아이들이지만, 사실은 가까이에 확실히 존재하고 있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번 책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담은 글이 들어간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동 노동은 부모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오히려 그것은 사회 정의의 결핍에서 비롯된다'(ILO, 국제노동기구)

많은 보고서가 팬데믹 이후 빈곤으로 아동 노동이 증가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국제노동기구(ILO)에 따르면, 약 1억 7,000만명의 아이들이 교육 환경에서 배제된 채로 일하고 있고 이 중 많은 수가 섬유와 의류 산업에 동원된다고 합니다. 아동 노동은 71%가 농업에 쏠려 있으며, 면화는 최소 18개국에서 아동 노동과 강제 노동으로 생산되는 가장 흔한 상품 중의 하나입니다.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 아르헨티나, 터키, 우즈베키스탄…. 

김이삭 시인·아동문학가
김이삭 시인·아동문학가

먼 나라의 일 같지만, 그곳에서 생산된 대량의 면화가 면직물이 되고, 글로벌 브랜드의 주력 상품이 돼 우리의 옷장에 걸립니다. 

이 그림책은 부드러운 이미지의 힘으로, 무관심과 외면의 빈틈에서 반짝거리는 선한 의지를 깨우려고 합니다. 그 의지가 씨앗이 되고 씨앗들로 모여 세상의 아이들이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기업이, 국가가, 함께 힘을 보태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세밀하게 그려진 그림을 따라 책장을 다 덮고 나면 그림의 서사만으로도 많은 울림을 주는 책입니다. 새해 첫 달 무슨 책을 우리 아이에게 보여줄지 고민해 보세요. 김이삭 시인·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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