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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희 글·그림 '추억은 그릇그릇' 표지
김진희 글·그림 '추억은 그릇그릇' 표지

식탁 위에 오를 때면 늘 배를 든든하게 채워 주는 전골냄비, 손님이 오는 날에 꺼내려고 아껴 두었던 접시, 여행을 기념하며 샀던 작은 유리잔, 외출 필수품이 된 보온병 등등 우리의 삶에서 그릇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물건 중 하나예요. 여러분에게도 잊지 못할 순간을 함께한 그릇이 있나요? 만약 아끼던 그릇들이 살아 움직인다면 어떨지 상상해 본 적이 있나요? '추억은 그릇그릇'은 매 순간 우리 곁을 지켜 온 그릇들과 그 안에 소복이 담긴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그림책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그림책을 감상하며 아름답던 날의 추억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요?

 깜깜한 상자 속에 갇혀 어디론가 실려 가는 그릇들의 모습에서 이야기가 시작돼요. 그릇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모두 어리둥절해 있었죠. 그때 파란 접시가 그릇들에게 폭탄 발언을 던져요. 바로 유림이 가족이 낡은 그릇을 싹 버리고 새 그릇 세트를 살 계획이라는 것이었죠. 그 말을 들은 그릇들은 커다란 충격에 빠져요. 하지만 프랑스 파리에서 왔다는 디저트 볼은 당당하게 무대 앞에 나서서 자신은 절대 버려질 리가 없다고 말해요. 유림이 엄마와 자신은 운명처럼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으며, 그 무엇도 둘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없을 거라고요. 그러자 프라이팬과 전골냄비도 앞다투어 지난날의 활약을 뽐내며 자신이 버려질 수 없는 이유를 말해요. 과연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요? 그릇들은 지금 어디로 향하는 걸까요?

 이 이야기 속에서는 꼼짝없이 버려질 위기에 처한 그릇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엿보는 재미가 있어요. 자신의 가치를 내세워 절대 버려질 리 없다고 확신하는 그릇과 버려지면 버려진 대로 새로운 모험을 떠날 수 있다며 오히려 즐거워하는 그릇, 침착함을 유지하며 흥분한 이들을 달래는 그릇까지.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는 그릇들 덕분에 이야기가 한층 더 풍부하게 다가오지요. 또한 그릇들이 펼치는 황홀한 추억의 무대를 감상하며 함께해서 행복했던 순간들, 잊고 있던 우리들의 소중한 일상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릇들을 태운 차가 한적한 공원 옆을 지나요. 그 풍경을 바라보던 보온병과 머그잔은 유림이와의 즐거웠던 공원 나들이를 떠올리게 되죠. 하지만 이제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울컥 눈물을 쏟아내요. 머나먼 숲을 바라보던 도마와 나무 그릇도 추억에 잠겨요. 그렇게 한참 시간이 지나자 덜컹! 하며 차가 우뚝 멈춰 섰어요. 그 순간 그릇들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고, 상자 틈 사이로 들려오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에 그릇들은 또다시 끝없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하죠. 정말 이대로 바다에 버려지는 거면 어떡하죠? 그릇들은 더 이상 유림이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걸까요? 이 책은 큰 매력은 그릇들의 이야기가 현실과 상상을 교차하며 전개된다는 점이에요. 특히 극장 무대에 올라 활약을 뽐내는 깜찍한 그릇들의 모습과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하는 정다운 모습에서 그저 평범했던 그릇들의 색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김이삭 작가
김이삭 작가

 또한 이 이야기 끝에 그릇들이 과연 어떤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 함께 상상해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이에요. 굳게 닫혔던 상자의 문이 열리는 순간, 여러분의 눈앞에 아주 깜짝 놀랄 만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저도 이 그림책을 통해 잊고 있었던 추억이 새록새록 피어나요. 차곡차곡 그릇을 사 모았던 하늘나라 가신 엄마, 그 이유를 깨달아가는 봄날입니다. 김이삭 시인·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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