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퉁불퉁한 바닥의 방 세 칸, 마루 한 칸, 부엌과 욕실이 있는 일층 단독주택, 쉰 살 먹은 일제 괘종시계의 늙고 정겨운 바늘 돌아가는 소리, 마루 한 켠을 비추는 졸린 햇볕, 소담하고 정성스런 텃밭, 그 옆에 놓인 오후의 나른함과 낡은 의자, 추어탕과 곰탕을 끓이던 큰 솥이 걸린 아궁이, 무엇이든 다 있을 것 같던 창고, 창고 옆 주렁주렁 널린 양파와 마늘, 삭은 빨랫줄과 집게, 시간에 익어가는 장독대. 오래된 집에, 그보다 더 오래 우리 곁에 계실 줄 알았던 어머니. 작은 키에 다부진 몸, 경쾌한 발걸음, 삶에 대한 애착이 남다
공간이 주는 느낌은 저마다 다르다. 공간을 구성하는 빛과 질감, 시공간을 지각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다. 때로는 안정감을, 때로는 외로움을 자아낸다. 문득 궁금해진다. 인간의 역사가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펼쳐지는 미술관을 좋아한다. 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우주의 역사를 빛으로 이야기하듯, 미술관은 인간의 역사를 특별한 공간에 빛을 이용해서 이야기를 펼친다. 작업은 그 특별한 공간과 빛을 포착한다. 간결한 선들 사이로 만들어진 공간에 스며드는 빛은 그 자체로 나에게 특별한 감성을 자아낸다. 보편적 인간의 삶의 역사를 보여주는 공간에서
현관문을 나서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할 때가 있다. COVID-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지 2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가끔은 마스크를 잊어버리고 집을 나서기 때문이다. COVID-19는 우리의 일상과 만남, 여행을 멈추게 했고, 마스크는 우리의 미소를, 인사를, 행복을, 위로를, 공감을 가렸다. 길어지는 멈춤과 가려짐은 적응이 되지 않을 모양이다. 작업은 가족이 매일 쓰고 버려야 하는 마스크를 소독하고 살균하여 캔버스로 사용하고, 그 위에 멈춤이 시작되기 이전에 여행지에서 만났던
빛은 절망이다.창은 어둠이다.희망은 고통이다. 언어는 죽음이다. 빛과 어둠은 예술이 될 수 없다. 별 같은 죽음은 아린 희망이어야 한다. ......2019, 다하우 수용소에서 독일 뮌헨 근교에 다하우 수용소가 있다. 뮌헨에서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가지 않아도 도시와는 다른 공기를 만나게 된다. 그저 한적한 동네임에도 그곳이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곳 중 한 곳임을 알게 되는 순간 하늘과 공기와 벽과 흙과 빛은 달라진다. 수용소 입구의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가 새겨진 문을 통과하면, 넓고 황량한 운동장이 나타
#1 사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그림이나 문자가 아닌 사진, 시각 언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질문의 끝에 ‘행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행간이란 시의 연과 연 사이의 공간을 뜻한다. 행간은 수많은 사유의 공간이다. 삶과 죽음, 존재와 부재, 행복과 불행, 진실과 거짓, 선과 악, 소녀와 숙녀, 여자와 아줌마, 젊음과 죽음, 진지함과 가벼움, 설렘과 지루함, 당당함과 비루함, 즐거움과 우울감, 상식과 비상식, 현실과 비현실, 안정과 불안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이다. 그 모든 것 사이에서
오랜 기간 계속되는 코로나19로 모두의 일상이 위축되고, 세상은 급변하고 있다.충격에 휩싸인 채 몇 달을 흘려보내고 마스크가 익숙해져 버린 어느 날, 사진가로서의 나의 위치와 역할을 생각했고, 카메라를 메고 밖으로 나아가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비로소 나는 ‘산책자(flâneur)’로서의 특별한 위치를 알게 되었으며, 동시대의 기록자가 되었다.이 시대를 걱정하고 공포스러워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나와 카메라는 미미하고 아주 적을지라도 존재할지 모를 미적 요소, 위로, 희망, 보편성을 찾기 위해 길을 나선 것이다. 이것이 지금 이
매일 무엇을 찍고 싶어 하는가,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나에게 무엇인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가를 생각한다. 생각의 끝에 다다를수록, 나에게 의미 있는 해답은, 결정적인 순간이나 격정적인 스토리가 있는 사진이 아님을 알겠다. 당연한 결과로 기록으로서의 다큐멘터리를 넘어, 보이는 것들 너머에 있는 인간 사고의 기저에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싶어졌다. 이를 위해서는 내 앞에 익숙하게 서 있는 장면들, 매일 보는 순간들, 반복되는 일상들 속에서 괴리 또는 중첩되어 있는 수많은 감정들, 그릴 수도 없고, 말로 표현할 수도 없는 행간을 떠
모두의 일상이 단절되고 멈춘 2020년. 그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뉴스 키워드는 코로나19, 팬데믹이었다. 또한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야 하는 위기와 불안의 시대를 살고 있다. 우리는 이렇게 코로나19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모두의 협력과 인내로 고통을 끝낼 것이라 믿으며, 오늘도 두꺼운 마스크 속에서 숨을 몰아쉰다. 여기에 더해 오래전부터 오늘, 또 앞으로의 미래까지 너무나 조용하면서도 끊임없이 우리의 미래를 고통 속으로 끌고 들어갈 문제는 바로 여러 환경 문제일 것임은 누구도 부정할
2022년 임인년 새해를 맞아 울산에서 활발히 활동중인 사진작가 5명의 작품을 초대해 온라인갤러리 '갤러리U+'를 마련했습니다. '갤러리U+'의 '5인 5색'이란 타이틀로 온라인갤러리에 참여한 작가는 '송무용, 송화영, 안남용, 이병록, 이순남'으로 개성이 넘치는 5명의 각기 다른 창작의 세계를 만나 본다. 그 5번째 참여 작가로 송화영의 '호계역'으로 온라인 전시를 시작한다. 작가 홈페이지 바로가기 ▶ 1922년 10월 처음 문을 연 호계역은 동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