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 산다는 일의 허망함이 가슴을 비집고 들어와 똬리를 틀었다. 오전에는 평소 존경하던 박방희 선생님의 부고 소식을, 오후에는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부고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우짜노!" 안타까운 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고인의 명복을 빌며 기도를 바치는 것뿐이다. 삶과 죽음이 사람을 갈라놓는 일은 어쩔 수 없지만, 우리나라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남한과 북한으로 갈라져 지낸 지 어느새 70여년이 되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입으로 부르기는 해도 실제로 통일을 염원하는 사람이
올가을은 단풍이 유난히 아름답다. 이태원 참사 사건만 아니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아름답게 물든 가을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고운 단풍을 봐도 마음 한구석 아릿한 슬픔이 떠나지를 않는다. 아직 빛나고 아름다워야 할 청춘들의 죽음 앞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기도뿐이다.헛헛함을 안고 지내는 중에 기쁜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 소식은 다름 아닌 책 출간 소식이다. 무심하게 지내는 일상 중에 어떤 사람의 이름만 떠올려도 빙긋이 미소 짓게 된다면 그의 삶은 축복 받은 것이 아닐까? 그런 축복을 받는 분이 이번에 단편
어느새 가을이다. 선득한 날씨에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수변공원 산책을 나섰다. 가을이 되면 어느 시인의 시처럼 나무나 꽃들은 봄부터 가꾸어 온 잎과 열매를 보여주기 위해 멋진 전시회를 연다. 수변공원 산책길에서 만난 감나무, 모과나무는 열매로 가지가 휘어질 지경이다. 수변공원의 벚나무와 색색의 꽃들, 억새, 부들도 곱게 물들어가는 중이다. 하늘과 호수도 여름과는 그 빛깔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들만의 전시회가 시작되었나 보다. 여름내 잎사귀 뒤에 숨겨두었던 열매를 가만히 내미는 나무도 있다. 버스정류장 가는 길, 곱디고운 빨간 열
나무가 걸어 다닌다면?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러면 사람이 다니는 人道, 차가 다니는 車道, 나무가 다니는 木道가 있어야겠지만.이정선 시인의 첫 동시집 '걸어가는 나무'는 제목부터 유쾌하다. 이 시집에는 72편의 동시조가 소복소복 들었다.-시조에 동심을 담아보고 싶었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동그라미입니다. 바로 우주의 마음이죠. 이런 어린이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누구나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유로운 동시보다 글자 수가 자유롭지 않은 동시조가 힘들 수도 있지만 아름다운 한글을 동시조라는 그릇에 담아서 은은한 향기를
30도가 넘는 여름인데 이상하게 마음은 오슬오슬 춥다. 책꽂이에서 이근정 시인의 첫 동시집 '난 혼자인 적 없어'를 꺼냈다. -세상의 끝은 없어요. 지구는 둥글거든요. 그러니 아무리 걸어도, 우리는 혼자 있지 않아요. 혼자 있을 수가 없어요. 반드시 누군가를, 무언가를 만나게 되거든요. 힘든 날이면 "나 좀 울 것 같아." 소리 내서 말해요. 분명히 누군가 듣고 있어요.-시인의 말 중에서 - 맞다, 나는 혼자가 아니다. 사람은 못 만날 수도 있지만, 나무를 만나거나 참새를 만나거나 길고양이를 만날 수는 있다. 느긋하고
딸과 사위가 회사에서 10년 근속 휴가를 받아 유럽 여행을 떠나면서 키우던 개 밤이를 우리 집으로 데려왔다. 밤이를 부르는 남편의 목소리에 꿀이 떨어진다. 무뚝뚝한 남편의 목소리가 저렇게 다정했나 싶다. 오늘은 푸른책들에서 나온 박금숙 시인의 첫 동시집 을 펼친다. # 강아지의 변신앉아!손!기다려!맛난 걸 줄 때마다군인보다 더 빨리 행동하는귀염둥이!과자!산책!나가자!좋아하는 말을 할 때마다꼬리 흔들며 착착 알아듣는천재!목욕!치카!병원!싫어하는 말을 할 때마다귀머거리처럼 못 들은 채 도망가는여우!너는,너는,도대체 정체
아직 5월인데 어느새 여름이 성큼 다가와 우리 앞에 섰다. 나뭇잎들은 더 푸르러지고 새들 노랫소리 더 명랑하다. 이번엔 강기화 시인의 동시집 '멋진 하나'를 펼친다. 시집 속에 짧고 유쾌한 시들이 가득하다. 하나씩 꺼내 읽으니 입 안에서 톡톡 튀는 귤 알갱이처럼 상큼하다. 잎사귀 잎사귀가 입이라면얼마나 시끄러울까 잎사귀는 귀라서잘 들어주는 귀라서 새가 노래하러 오나 봐가끔은 울고 가나 봐나무 잎사귀가 입이나 귀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엉뚱한 생각이 멋진 시로 태어났다. 상상만으로 즐겁다. 잎사귀가 입이라
지난 1년간 13개의 아동문학 잡지에 실린 작품 중에서 뽑은 55편의 동시를 모은 책 '2022 오늘의 좋은 동시집'에서 한편 골랐다. 종이 상자 집 1신이림 쓸모가 없어 버려진종이 상자가길고양이게는 바람 막아 주는집 한 채 되었다. 전철역 입구 공원,커다란 달 모양 돌조각 아래삐뚜름히 서서아늑한 집 한 채 되었다. 민들레 한 송이도노란 가로등 되어앞을 환히밝혀 주고 있다. (동시 발전소·여름호)SNS를 통해 동화작가 중에 길냥이를 돌보는 이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년 혹은 더 오랜 시간, 그들의 밥을 챙기고
'2022 오늘의 좋은 동시집'을 펼쳐 든다. 지난 1년간 13개의 아동문학 잡지에 실린 작품 중에서 뽑은 55편의 동시를 모은 책이다. 쉰다섯 분의 시인이 쓴 시를 골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톡톡 튀는 시인들의 개성만큼 알콩달콩, 새콤 쌉싸름한 시들을 품었다. 물방울 운동송찬호 튼튼한 물방울이 되기 위하여전깃줄에풀잎에나뭇가지에날마다 매달리기 운동을 한다 그래서 동글동글해지고단단해진다몸 빵빵한 물방울이 된다 물방울에서물빵울이 된다운동이 다 끝나면 톡, 떨어진다 (동시마중 7·8월호) 운동을 다 끝낸 단단한 물빵울들이
15명의 동시인들이 함께 참여한 인권 동시집 '나는야, 분홍왕자'가 지난 2월 28일 세상에 나왔다. 인권은 아주 작고 소소한 말 한마디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른다.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 누군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건 바로 인권을 무시하는 일이 아닐까. 이 동시집은 5부로 되어있고 모두 51편의 동시가 실려있다.제1부, 나와 너 사이의 인권제2부, 나와 우리 가족 사이에서의 인권제3부, 편견과 차별을 넘어제4부, 나와 우리 가족 사이에서의 인권제5부, 인권아, 우리 함께 나아가자 길을 묻는 손님 차영미어린이는어린 사람
성큼 다가온 3월이 달달한 매화 향을 선물한다. '금메달이 뜬다'는 김시민 시인의 여섯 번째 동시집이다. 시인의 말에서 그는 -이 동시집에 우리들이 사는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담으려 했습니다. 학교와 학원, 집과 자연 속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일상적이 일과 느낌과 생각을 어린이의 말로 적었습니다- 라고 했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 많아 아이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시인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시가 되었을 것이다. 옷 어느 것이 가장 너다운 거야? 7번을 단 축구 유니폼?피아노 치는 턱시도?아니면책가방 메
달력을 벽에 걸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탁상 달력도 무용지물이 된 지 오래다. 휴대폰 기능에 달력이 있으니 굳이 종이 달력을 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녹여서 붙여 쓰는 본드식 후크를 사서 벽에 달력을 걸었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달력이고 딸이 인터파크에 예약까지 해서 받은 달력이라 특별하다. 새해는 이 달력처럼 뭔가 특별하고 좋아하는 일들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결심으로 출발한 2022년 1월도 마지막 주일을 맞았다. 김이삭 시, 신소담 그림, 가문비 어린이 출판사에서 펴낸 '순 우리 말 민화 동시
어린 시절, 성탄절 무렵이면 산타를 무척이나 기다리고는 했습니다.산타가 선물을 갖다준 적이 없어 해마다 실망에 빠지고는 했었지요.올해는 성탄절에 와야 할 산타 할아버지가 코로나19 때문에, 2주 뒤인 2021년 1월 9일에 온다는 이야기에 피식 웃게 됩니다.아이들이 이 글을 읽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산타할아버지는 코로나19가 유행인 걸 알고 있으니 2주 앞당겨 출발해서 25일 성탄절에 틀림없이 오실 겁니다.올해는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대신 고추잠자리와 웃는 할머니가 그려진 동시집을 선물 받았습니다. 누군가에게 늘 넉넉하게
울산에서 가장 부지런한 시인은 김이삭 선생님이 아닐까 싶습니다.부지런한 농부가 가을에 풍성한 수확으로 곳간이 가득하듯, 김이삭 선생님의 가을 곳간도 언제나 풍성합니다. 김이삭 선생님의 동시집 '우리 절기 우리 농기구'의 차례를 살펴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되어 있습니다. 각 계절별로 절기들도 나와 있는데, 그 절기에 필요한 농기구들을 소재로 시를 썼습니다. 거기다 순우리말로 나옵니다. 이 동시집 한 권을 읽으면 절기와 농기구, 순우리말까지 알게 되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셈입니다. 아, 깜빡했는데 한자도 나와 있
창가에 가득 10월의 햇살이 찾아왔습니다.신선산을 마주하는 아파트에 산 지 5년이나 되었는데, 집에 찾아온 햇살을 요즘에야 만나게 되었습니다. 푸른 나무가 거실 베란다 창을 가득 채우는 집에 사는 일이 참 고맙고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객지로 나가 사니 함께 지내지 못하는 게 무척 아쉽습니다. 이런 환경이면 아이들과 좀 더 기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일요일 오후, 책장 앞을 어슬렁거립니다.이번 달에 소개할 책은 김시민 선생님의 동시집 '공부 뷔페'입니다. 책 표지 그림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아이의
부산에서 아름다운 동시 교실을 열고 계신 박일 선생님의 동시집 '손주병법'의 문을 엽니다. 무료로 가르치고 계시는데 저도 그 혜택을 받은 제자 중 한 사람이지요.# 손주병법"차렷!""열중 쉬엇!"알아듣지 못하니까보듬었다가업었다가까꿍까꿍유희를 하게 하면서선생님도할아버지도 무너지게 해요.세상에서가장 버릇없는행동할아버지 이기는 법이거든요.말귀 못 알아듣는 손주를 보면서 쩔쩔매는 선생님의 모습이 눈에 떠오릅니다. 손주가 셋이라는 선생님. 이 동시집의 그림을 박솔비, 박동하, 박한결 세 손주가 힘을 합해 멋지게 그렸습니다.#
오늘은 조영남 시인의 '왕! 왕! 으뜸 왕 이야기' 동시집을 꺼내봅니다. 영남 시인은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역사를 이야기 한 지 10년이 넘었다고 합니다.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쉽고 재미있게 왕을 기억할까 고민이 많았답니다.그래서 한 편씩 쓰다 보니 마흔 다섯 분의 왕들 이야기로 이 동시집을 만들게 되었답니다. 단군왕검으로 시작한 동시는 고종을 마지막으로 끝납니다.저는 왕 중에서도 으뜸 왕은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부흥기를 이루었던 두 분이었고,
"제 꿈은 어른으로서 이 땅의 아이들에게 좀 괜찮은 선물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제 동시를 읽으면서 크게 한 번 웃고, 공감하고 위로 받을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선물이 어디 있을까요"-김자미 시인의 말 중에서'달복이는 힘이 세다'는 김자미 시인의 첫 동시집입니다. 달복이는 왜 힘이 셀까요?달복이는 힘이 세다공부도운동도얼굴도내세울 것 없는나, 김달복잘난 반장도 꼼짝 못해싸움 짱도 함부로 못해누구 앞에서도싱글벙글어떤 일에도기죽지 않는김달복만의힘이지달복이의 힘은 웃음입니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속담처럼 달복이는
코로나19 때문에 불안한 마음으로 2월을 보내고 3월을 맞았다. 아파트 화단에 겨울을 이기고 핀 매화를 보고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겨울 잘 견디고 꽃 피우느라 수고했다!"봄이면 매화나무 앞에서 말을 건네고는 했었는데 말이다.오늘은 김이삭 선생님의 순우리말 바람 동시집 '우시산국 이바구'를 꺼냈다.이바구는 이야기라는 뜻의 경상도 말이다. 차례를 보니 1막 2막 3막으로 되어 있다.연극 공연을 보듯 1막을 펼쳤다.모두 12편의 이야기가 들어있다.서생 돌미역미역은 귀가 달렸다누가 울고 있지 않은지누가 토라져 있지 않은지바